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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2:16-17  선악과 그 나무가 의미하는 것

 

                                                              2022년 12월 4일 주간목장교안

20221204 목장교안.hwp

20221204 목장교안.pdf

 

 

  1. 성탄을 앞두고 몇 주간 ‘성탄을 목표로 한’ 메시지를 나누려는 계획 가운데 지난 주 택한 본문은 창세기 2장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후, 이같이 명령하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16-17절)” 이런 엄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 그 결과 아담의 후예인 인류는 하나님이 베푸신 그 온전한 조화와 질서를 누리고 살아가기에 부적절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배신한 자들이 무슨 권리로 그 분이 만든 산소를 들이킨단 말인가!). 그들이 하나님을 거부한다는 것은 마치 선풍기가 스스로 전원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과 같아서 그들에게 당장의 죽음을 의미해야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렇게 짧게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의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한다. 하나님께는 그들을 구원할 계획, 다시 말해 성탄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눔) 함께 나누기 전에 지난 주일 설교에서 당신이 특별히 마음에 남은 부분이 있다면 서로 말해 보자.

 

  2. 성경의 이 모든 이야기는 사람들이 왜 이토록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는지, 구원이 필요한 그들의 상태를 설명해 준다. 타락 이후 그들의 삶은 살았다고는 하나 생명으로 충만한 삶은 아니었다. 무언가 부족하고 고통스런 삶이었다. 타락 이후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살게 될 세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관계의 고통과 ⋆해산의 고통 ⋆노동의 비효율성을 안고 

⋆환경의 간헐적 공격을 받으며(가시와 엉겅퀴) ⋆노화와 죽음 아래서 살아가는 인생

 

 

  그 때 이래로 아담의 후예들은 아담이 초래한 비극적 상황 속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들의 상황은 이전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때까지 그들은 크게 세 가지 관계에서 채움 받고 만족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었다.: 하나님, 이웃인 “너”, 그리고 “물질과 환경”.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그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들의 삶에 왈가왈부하는 것을 거절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거부하자 그의 삶에서는 “하나님으로 인한 만족과 기쁨”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 분이 빠진 자리에는 그 분만큼이나 큰, 엄청난 공허와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 공허와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그대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그 자리를 무언가로 채우려 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웃인 “너”와 “물질과 환경” 뿐이었다. 하나님을 등진 인간은 그것에라도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절박함은 그것들과의 관계를 정상적일 수 없게 했다. 이웃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사랑을 집착이 되게 하고, 물질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그것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종노릇하게 된 것이다. 또한 존재 깊은 곳에 있는 공허와 불안은 우리의 인식도 바꾸어 놓기에도 충분했다. 같은 것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지게 된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온 변화도 그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까이 오는 것이 어제와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이 느끼는 대로 몸이 반응한다. 왜 몸이 반응한 걸까? 존재 깊이 인식의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서도 이전처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고 이렇게 물으셨다. “누가 너를 벗었다고 하더냐?” 

  또 아담의 반역이후 아담의 후예들은 본성의 변화도 경험한다. 타락의 영향으로 본성이 오염되고, 그 경향도 죄를 향해 기울어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것이면 무조건 반대하도록 경향을 

띠게 된 것이다. 하나님도 싫고, 교회도 싫고, 성경도 싫고, 기독교인도 싫게 되었다. 무조건 싫으니 지성도 그 방향에서 작동하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 이성이 대단히 객관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타락의 영향이 더 지배적이다. 지성도 타락의 영향 아래 그것에 공여하도록 기능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라. 인간이 태어난 곳도 각박한 에덴 바깥인데다, 거기서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한 근본적인 불안과 두려움과 공허함을 안고, 그것 때문에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게다가 본성마저 기울어진 채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나? 죄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들은 죄에 죄를 더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것으로 인해 인간은 죄 아래 갇히게 된 것이다.  

질문) 당신은 인간이 어떻게 죄의 종노릇하게 되었는지는 이해했는가? 당신은 당신 안에도 죄를 향한 이런 원리(Mechanism)가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3. 선악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너무 답답한 나머지 이렇게 묻는다. 

‘그런 선악과를 왜 만들어서 ... 사람들을 다 이렇게 못 살게 만들었나?’

‘그것이 없었더라면 ...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분노나 의문은 선악과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선악과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그 열매의 성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 나무에 금지의 명령을 갖다 붙이셨다는 것이다. 그건 그곳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가장 기본적인 법 한 가지를 위한 것인데 그 법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기 전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아담아! 너는 하나님이 아니다! 너는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절대적 자유자는 아니다. 너의 자유는 나의 사랑과 허용 안에서 자유일 뿐이야! 내가 말했지 않니? 이 동산의 모든 과일을 다 네 마음대로 먹으라고 ... 그게 네 자유야! 

하지만 그 자유는 주어진 자유야. 그런 의미에서 절대 자유는 아니야. 

 

선과 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너의 선악의 판단도 절대적인 건 아니야. 선악의 가장 근본적인 판단 기준은 네 안이 아니라 네 밖에 있어! 너는 네 눈에 좋은 대로 혹은 네 입맛에 맞는 대로 선이라 혹은 악이라 하면 안 돼! 너의 판단은 늘 너와의 관계 중심으로 내려질 가능성이 농후하지! 너의 자녀 ... 네 친한 사람 ... 너의 작품 ... 그런 것에 치우쳐 내려질 가능성이 농후하지! 그러나 너는 기억해! 너와는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는 걸... 그건 창조주의 시각이야. 나는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이 모든 것을 두루 사랑해! 그러므로 기억해! 모든 가치 판단의 중심은 나야! 그 기준은 네 자신이 아니야! 너는 이것을 기억해!”

 

  선악과는 이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당연한 원칙을 바로 이 나무에 붙들어 맨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그것을 모르거나 잊으면 안 되기에 그 나무에 붙들어 매며 말씀하신 것이다. 마치 지뢰가 존재하는 곳에, 그곳에 지뢰가 있음을 모르면 안 되기에 주변 나무에 “지뢰조심”이라는 푯말을 붙이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그냥 단순히 과일 하나를 먹은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의 위치를 망각하고 바른 위치와 관계로부터 이탈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것을 따먹은 행위는 하나님만이 절대자유한데도 인간이 자기도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자기도 하나님처럼 완전한 자유자임을 선언한 행동인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느낌을 최종적인 선악의 기준으로 채택한 사건이다. 

 

질문) 당신은 선악과 사건을 이해했는가? 그러고 보면 이 사건은 오늘도 이 세상 속에서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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