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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32:1~12   야곱, 처음으로 기도하다

                                                                 2022년 9월 18일 주간목장교안

 

                                                                          20220918 목장교안.hwp

                                                                          20220918 목장교안.pdf
 
  1.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이 그동안 지난 20년간 자신을 괴롭혔던 라반과의 문제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에 이번에는 20년 전까지 자신이 괴롭혔던 에서의 문제가 버티고 있었다. 지금 야곱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고 있다. 조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상속자로서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 돌아간다. 그런 점에서 야곱의 귀향은 구속 역사상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인데, 그것이 진정 진전이 되기 위해서는 야곱이 그 땅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해결되어야 할 과거가 바르고 적절하게 마무리되어야 했다. 형 에서와의 화해가 이루어져야 했다. 그것도 형식적인 화해가 아니라 진정한 화해 말이다. 잘못한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진정 미안해하는 마음과 용서의 요청이 있어야 했다.
  둘 사이에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변화된 마음이 전제되어야 했다. 본문에는 그 화해의 마음이 형에게 야곱이 사람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전 같으면 야곱은 가나안에 몰래 들어가서 둥지를 틀고 비밀리에 군사력을 기른 후 어느 날 존재감을 드러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야곱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형에게 자신이 먼저 ‘지금 집으로 돌아가고 있노라’고 알려준다. 아무리 20년 전이라도 형 에서는 자기를 죽이려던 사람이다. 지금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바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알리는 것은 자칫 위험을 자초할 수 있는 일로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야곱은 몇몇 종들을 형에게 보내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창32: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형을 가리켜 “내 주”라고 말하고 자신을 가리켜는 “주의 종 야곱”이라고 칭한다. 오래전에 야곱은 자신이 형 노릇 하려고 그렇게 난리를 피웠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은 야곱이 형을 속이려는 속임수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게 자기가 형의 형이 되는 게 아니라 형 에서와의 화해와 회복뿐임을 강력하게 표현한다.
  지금 야곱에게는 진정한 겸손과 용기가 보인다. 이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다.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야곱을 이런 용기 있는 겸손과 고백을 할 수 있는 자리로 이끌어 온 것이다.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는 많은 은혜가 있었다. 더불어 야곱이 라반과 헤어져서 길을 가던 중에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다. “창32: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는데 이를 본 야곱은 그들이 군대라고 생각되었고,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하면서 그곳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했다. 마하나임의 뜻은 진지(Camp)다. 야곱 자신의 식구들이 진 친 그곳에 여호와의 군대도 거기 함께 진 치고 있음을 야곱은 느꼈다. 이는 하나님이 일찍이 벧엘의 그 꿈 사다리에서 말씀하신 것이 지금도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엄청난 용기를 주는 일이었다. 은혜 안에서의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그 사람 안에서 생각을 정돈해 주고 그 정돈된 마음에서 능력, 곧 힘 있는 겸손과 정직함을 가능하게 했다. 모든 게 오랜 세월 그와 함께 하신 은혜가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특징은 늘 그렇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질문)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는가? 그런 변화를 경험하기까지 어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는가?

  2. 야곱이 그렇게 용기를 내어 종들을 보냈더니 종들이 돌아와서 전한 소식은 모든 가능성 중에도 최악이었다. 에서가 그 소식을 듣고 400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얄미운 동생에게 평생 잊지 못할 방식으로 교훈을 가르치러 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도 어느 날 은혜를 받은 후 마음에 깨달음을 얻고 그 말씀의 도전을 따라 누군가와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려고 어려운 시도를 하는데 그것이 완전 무시당할 때 우리 마음은 은혜를 받았어도 힘들다. 하지만 바로 그런 시험의 순간이 우리가 그 일을 왜 하려 하는지 그 진정한 이유를 드러내게 된다. 그 일을 도모하는 근본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그 일에 어려움과 박해와 수치가 따르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내할 것이다. 그 옳은 일을 위해 모든 것을 참아낼 것이다. 그 결과가 당신이 바랐던 그런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일은 여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이 애초 자신의 명예나 안일이나 편리함 때문이라면 거기서 그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미리 해 둔 일이 있다. 그것은 이미 언급했던 미리 주신 은혜 외에도 퇴로 차단이다. 야곱과 라반이 창세기 31장에서 언약을 체결할 때 그들은 서로 돌무더기 이상으로 상대 진영으로 들어오는 일이 없기로 언약을 체결했는데, 그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것은 사실 야곱에게는 퇴로 차단이었다. 야곱에게는 앞으로 가는 것만 가능하고 뒤로는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뒤로 간다면 이제는 완전히 라반에게 꼼짝없이 매여서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영구히 라반의 종이 되게 생긴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더 큰 은혜, 더 큰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 때로는 우리의 퇴로를 차단하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을 통과해야 그 깨달음에 이르게 되고 그것을 앎으로 웬만한 것에 대한 두려움과 매임에서 벗어나는 자유에 이르게 되는데 선택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깨닫고 변해가고 성숙해가고 겸손해지는 그 과정이 어려우니까 그냥 그 자리, 그 경로를 벗어나 버린다. 성도들이 더 깊은 은혜를 체험할 때에는 어떤 공통점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뒤로 물러나지 않는 것과 그 자리에서 견디는 것이다. 그런데 뒤로 물러나지 않는 것과 그 자리에서 견디는 것이 우리 힘으로는 쉽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퇴로를 차단해 버리신다.
질문) 당신은 은혜를 받은 후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인내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퇴로를 차단하실 만큼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3.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야곱은 즉각 두 가지를 한다. 하나는 자기가 소유한 소와 양과 낙타를 두 떼로 나누는 것이다. 혹시 한 떼가 공격을 받으면 다른 한 떼를 데리고 도망가기 위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인간적 술수이자 믿음이 없는 행위로 생각한다. 야곱이 아직 옛 야곱을 버리지 못한 소치로 이해한다. 옛 자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야곱에게서도 옛 야곱의 모습이 종종 다시 나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야곱이 구사하는 모든 전략을 다 하나님께 맡기지 못한 불신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믿음이 곧 어떤 전략도 구사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실 줄 믿고 뒷짐 지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지켜주실 줄 믿는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이 지키지 아니하시면 내가 아무리 잠을 자지 않고 눈을 부릅뜨고 지키려 해도 지킬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가만히 있느냐 아니면 어떤 전략을 구사하느냐가 핵심이 아니다.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홍해 앞에서 막다른 곳에 봉착했다면 가만히 있어서 여호와께서 하실 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온다고 할 때는 다른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때에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가만히 있건, 전략을 구사하건 믿음 안에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야 할 때도 믿음 안에서 가만히 있고 전략을 구사해야 할 때도 믿음 안에서 전략을 구사한다.
  야곱이 자신의 짐승들을 두 떼로 나누는 전략을 구사한 후 곧바로 한 일은 기도다. 야곱은 최선을 다해 궁리했고, 그리고 이제 기도한다. 그리고 이것이 야곱의 이야기 중에서 야곱이 기도하는 첫 번째 모습이다. 마침내 자신의 모략, 자신의 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배운 것이다. 자신의 최선과 기도가 함께 간다.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도 그 최선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기도로 고백하는 것이다. 32장 8절과 9절을 함께 읽어보라! “창32: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야곱은 전략적 지시를 하자 곧바로 기도한다.
질문) 당신은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당신의 최선과 당신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4. 야곱이 기도할 때 야곱의 마음은 적어도 두 가지를 기억하려 하고 있었다. 지금 일어난 이 어려움에 잡히지 않으려고, 그 어려움이 자신에게 일으키는 두려움에 잡히지 않으려고 야곱은 두 가지를 기억했다. 하나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일이다.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창32: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그 어려움 가운데 매몰되지 않는 방법 중에 하나는 이미 받은 은혜를 묵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야곱이 기억한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이다. “창32:9 ...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창32:12 ...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받은 은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것보다 더 견고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 앞에는 내가 경험한 과거의 하나님만 계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루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둘을 디디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주장해야 한다.
질문) 당신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약속을 모두 기억하고 붙들고 있는가? 어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견고함을 믿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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