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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자와 씨름하다(창 32:13~25)

 

                                                              2022년 10월 2일 주간목장교안 

20221002 목장교안.pdf

20221002 목장교안.hwp

 

❐기분 좋은 만남이 되기 위해 자신의 발언을 조절합시다. ①대화를 독점하지 말고 ②발언의 기회가 동등하게 하고 ③남의 말을 가로막거나 비판하지 말고 ④자랑을 삼가 주세요.

 

   

  형과의 만남을 앞두고 야곱은 어마어마한 선물을 준비하고, 종들에게는 에서를 만나면 해야 할 말을 상세하게 지시했다. 그리고 밤에 처자들까지 다 강을 건너게 한 야곱은 홀로 남았다. 그는 왜 그 밤에 홀로 남은 것일까? 기도로 내일을 준비하려는 것일 게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가 찾아와 다짜고짜 그를 넘어뜨렸다. 야곱은 아마도 본능적으로 방어하느라 그 사람과 엉겨 붙었을 것이다. 마치 악몽 속의 가위눌린 사람처럼, 씨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야곱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밤중에 찾아온 그는 사실 하나님(혹은 그의 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 이상한 말 같지만 - 그는 야곱을 이기지 못하여(창32:25) 야곱의 엉덩이를 쳤고, 이 때문에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고 말았다. 더 이상 씨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야곱은 이제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던 중 날이 밝아오고 그 사람은, 끝까지 자신을 놓아 주지 않는 야곱에게 새 이름으로 축복하고 떠난다.

 

  1. 한 밤의 씨름은 어떤 점에서 <‘현재’ 야곱이 처한 상황>을 그려준다. 그는 지금 앞이 캄캄한 가운데 어려운 문제와 씨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문제 가운데 홀로 있다. 외롭고 두려운 상황이다. 여러분도 그런 상황에 있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앞이 캄캄한 가운데 홀로 무언가를 책임지고 풀어야 하는 상황 말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바로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해 주나?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바로 그런 때가 하나님을 특별하게 만날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분과의 특별한 만남은 늘 그렇게 홀로 있을 때 일어난다. 주변에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어떤 때 그런 일을 경험했던가? 여럿이 웃고 떠들다가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기도하다가 그것을 경험했다. 그런 점에서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시간, 혼자 기도할 수밖에 없는 시간 ... 그 시간은 너무 중요한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그 상황은 그냥 흘려보낼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을 만날만한 시간인 것이다 (사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나눔) 당신은 문제를 겪고 있는 시간, 그래서 기도해야 할 시간 ... 그런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깨어 묵상하며 기도하나? 아니면 손 놓고 신앙을 떠나 방황하나? 최근 당신의 시련 통과기(通過記)를 말해 보라.

 

  2. 이 씨름 장면은 사실 <야곱의 일생>과도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야곱의 일생은 한 마디로 “씨름”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자가 되고,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기 위해 평생 사람들과 씨름하며 살아왔다. 그들을 상대로 그는 늘 이겨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에서에게는 이미 연락했고, 그래서 에서는 400명을 데리고 오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힘도 없고, 퇴로 또한 이미 차단되었다. 선물을 보내고 말을 어떻게 할지도 세세하게 지도했지만, 그런 최선에도 불구하고 에서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 어쩌면 그에게는 내일이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전처럼 잔꾀를 부려 넘어가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복 주심이 없이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그가 그 땅에 들어가기 전 꼭 경험해야 할 요소다. 그래서 그는 그 어둠 속에 홀로 남겨져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 ‘그동안 나는 우리 인생이 어떤 방식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고 믿어 왔던가?’ 그렇게 자문해 본다면 그는 자신이 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럴 수 있다고 믿어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태신앙인이면서도 그는 복은 하나님께 구하여 얻는 어떤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겨서 그들이 차지할 것을 자신이 차지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복은 하늘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을 내가 차지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형에게서 장자권도 빼앗고, 그의 축복기도도 가로챘다. 그가 바라보는 인생은 늘 제로섬(Zero Sum) 게임이었다. (제로섬(Zero Sum) 게임이란 ... 총량은 일정한데 나와 너가 서로 자기 몫을 늘리기 위해 다투는 게임을 말한다. 총량이 일정하기에 네가 다 차지하면 나는 아무 것도 차지하지 못하고 네가 20%를 더 차지하면 나는 그만큼 덜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그는 늘 필요 이상으로 경쟁했고 원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주변 모두를 적으로 만들었다. 승리 뒤에는 늘 깨진 관계와 상처가 남았고 그 결말은 언제나 자기가 도망가는 것이었다. 야곱이 그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배워야 했던 것은 그런 식으로는 이겨본들 소용없으며, 이제 그 땅에서는 이와는 다른 원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인생은 단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 안에서 우리의 삶은 주님의 복주심 안에서 사는 삶이다. 그것은 단지 총량이 정해진 삶이 아니라 총량이 변하는 삶이다. 같은 땅에 같은 노력 쏟아 붓더라도,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면 총량이 늘어나고, 주시지 않으면 총량이 줄어든다. 이에 관해서는 장차 출애굽의 때에 광야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또 배워야 했다. 그것은 내가 많이 차지한다고 남이 적게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야곱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그가 씨름해야 했던 대상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이고 그 뜻이 지금 여기에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라는 말이다. 붙들고 씨름해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이라는 말이다. 

  당신의 삶을 돌아보라.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단지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나?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기대하고 의지하고 있나? 당신의 인생관을 시편 37편과 비교하며 고백해 보라. “시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 

 

질문) 당신에게는 그런 경험이 있나?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 이것을 경험한 일이 있나? 당신의 인생관은 이 말씀과 같은가?

 

  3. 지금까지 야곱의 삶은 늘 사람들과의 경쟁이었다. 그들이 마음을 둔 그 곳에 마음을 두고 그들과 꼭 같은 방법으로 싸우면서 그들을 이겨먹어 그들이 차지한 그것을 차지하는 것을 복이라고 말할 때가 많았다. 제로섬 게임처럼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복이라고 이해하는 삶을 산 것이다. 그래서 복이라고는 하나 복이 아니고, 승리라고 말하나 실은 패배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게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잔꾀를 부리며 약삭빠르게 쫓아다니던 삶을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겨먹던 야곱에게 쫒아다닐 힘을 무너뜨린 것이다. 의미는 분명하다. 이전처럼 약삭빠르게 할 수 없어 당장은 답답할지 몰라도, 그러나 효율적인 것 같으면서도 상처만 남는 삶이 아닌 천천히 걸어도 샬롬을 이루는 길을 걸어가게 하신 것이다.

 

질문) 이 점에서 당신의 삶도 돌아보라. 당신도 복을 그렇게 말할 때가 많지 않았나? 당신은 정말 기독교적 가치를 가지고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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