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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보이느냐II (마가복음 8장 22-33절)

 

                                                 2024년 3월 17일 주간목장교안

20240317 목장교안.hwp

20240317 목장교안.pdf

 

  지난번 나눔 때 알려 드린대로 이번 주도 두 번 안수 사건을 가지고 나눈다. 목장의 리더들은 이번 나눔의 그러함에 대해 목원들에게 사전에 고지하기 바란다. 다음 주는 세례설교를 나눈다. 

 

  믿음이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다는 이 사실을, ‘그거? 내가 결정하면 되는 것 아냐?’하며 마치 쉬운 일 같이 여기지만, 성경에 따르면 그것은 결코 그냥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마가복음에서 주님은 그 모든 기적의 현장에서 그 모든 기적을 다 보았던 제자들 속에 믿음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성경 곳곳의 증언을 통해 믿음은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놀람과 감동 흥분 열정과 다름이 분명하다. 믿음은 단순히 그런 설렘과 흥분이 아니라 그 기적의 현장을 떠나서도 여전히 기억되고 적용되는 마음과 인식의 변화다. 주님이 안타까워하신 것은 제자들이 이적을 경험하고도 바로 다음 순간 마주치는 현실 속에서 그것을 기억하거나 적용함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믿음은 감동이나 열광, 흥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인식의 열림이라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기적을 보는 것만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것과 함께 (혹은 별개로) 하나님께서 눈을 여는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우리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 혹 기적을 보고 흥분해서 쫓아다니면서 스스로는 믿는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닌 것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에게 눈이 열리면 그건 어마어마한 축복이지만 그러나 그때로부터 신자는 신앙을 전부 기적 체험과 기적 추구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또 다른 위험에 봉착한다. 이제는 믿는다고 말하는데 늘 능력과 기적 얘기만 하는 거다. 그래서 주님은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아무에게도 자기에 관한 말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마가복음의 맥락에서 이것은 절반의 깨달음이다. 복음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아들이 압도적인 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약함과 실패와 고난을 통해 구원을 이루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기적을 보고 그 분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그런 신앙으로는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단지 평탄한 삶이 아니다. 성경을 대충 보지 않고 면밀하게 보면 우리는 오병이어나 칠병이어를 경험한 그들에게도 점심과 저녁 걱정 없는 내일이 약속된 것은 아니었다. 오병이어를 경험한 제자들에게는 생사를 걸고 싸워야 했던 풍랑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현실 속에 달라지는 것은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 자신 안에 예수를 주로 믿는 신앙이 생긴 것이다.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실 분, 오병이어의 주님, 죽은 자에게조차 생명이 돌아오게 하실 주님을 믿는 소망을 가지고 삶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일한 현실을 ‘이전과 다른 나’로 항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같은 현실 속에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

  

  1. 그런데 그 놀라운 분이 그 놀라운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구주가 되신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놀라운 능력을 다 내려놓고, 어느 날 갑자기 체포되는 방식으로, 체포되어서는 매 맞고 조롱당하고 부당한 재판과 같은 현실의 부조리에 희생당하는 방식으로 구주가 되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머리로 ‘아, 기독교는 이렇게 믿는 구나.’하고 이해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에 큰 감동을 받고, 그 길 밖에 없었음이 마음에 받아들여지고, 그 일로 인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고, 삶에도 적용되는 일이 일어나는 일은 너무 어려운 겁니다. 마가복음이 그것을 또 한 번의 안수로 표현한 것은 그것을 믿는 일이 또 하나의 기적처럼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그것은 조금 전에 “주는 그 그리스도” 라고 놀랍게 고백했던 베드로가 그렇게 흥분해서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 일을 믿는 일이 쉽게 여겨지나? 그렇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이것을 믿는 일을 그저 과거에 한 번 일어난 일에 대한 인정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일은 그 당시에 한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주님의 주님 되시는 방식은 당시 제자들에게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든 일이었던 만큼이나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과거의 그런 일이 있었음을 믿을 뿐 아니라 ‘오늘도 주님이 우리에게 그런 방식으로 주님 되실 수 있음’, 또 ‘오늘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임’을 받아들이고 믿고 적용하는 것이다.

질문)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주님을 그런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게 쉬운 일일까? 당신은 왜 이렇게 많은 교회들이 예수 믿으면 잘되고 잘된다는 번영의 복음을 믿고 있는지 이해되었나?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이해되었나?

 

  2.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베드로의 반응에 대해 주님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살펴보자. 주님은 뭐라고 하셨나?

막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주님은 베드로를 사탄의 영향 아래 있다고 생각하신다. 그러면서 제자를 통해 제자의 행세를 하고 있는 사탄에게 명령한다. 베드로의 뒤로 물러나라고 ... 사랑하는 제자에게 사탄 운운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심하다 싶은 표현 같다. 그러나 주님의 이런 반응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분명하게 시사한다. 그것은 사탄이 하는 일이 뭐냐는 것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노력이 실패하고 하나님의 기적적 역사로 우리의 눈이 열리면 그 다음부터 사탄의 목표는 그저 그 단계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더 이상 눈을 뜨지 않고 그저 주님의 능력만 외치며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나? 믿어도 그런 식으로만 믿으면 교회가 스스로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주님을 따르는 데 실패함으로써 자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 당신은 우리 주변에 어떤 교회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가? 두 번 안수받은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많다고 보나? 아니면 잘되고 잘되게 하는 예수를 전하는 교회가 많다고 생각하나? 당시은 누군가가 “능력의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 아멘!” “그 분이 기적을 베풀 것입니다. - 아멘!”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더 믿음이 출중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3. 지금까지의 설교를 듣고 당신은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 이 설교를 듣고 ‘주님은 우리의 병을 낫게 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거나 ‘이제는 그런 일 안하신다.’는 결론을 내면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을 성경이 말하는 논리대로 이해해야 한다. 성경을 올바로 읽어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가르치되, 주님의 능력과 그 모든 것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곧바로 십자가의 도를 가르친 게 아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이 어떤 능력의 주님인지 몰라도 된다고 하면서 그냥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지 않았다. 주님은 먼저 그들이 주님이 능력의 주님인 것을 충분히 알고 믿기까지 기다리셨다. 그리고 난 후 비로소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주님의 이 논리를 따라야 하겠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능력의 주님과 십자가의 주님, 이 두 고백이 단단히 결합되기를 원하실 것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우거나 억압하지 아니하고, 그 두 가지가 동등하게 살아 있고 성립하는 신앙, 그런 신앙이 되기 원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병들었을 때, 주님께 우리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해야 할까 안 해야 할까? 해야 한다. 왜 그런가? 우리는 주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기 때문이다. 낫지 않아도 시험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이 이 땅의 모든 환자를 다 낫게 하는 방식으로 구주되시겠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당신의 질병이나 애로를 가지고 주님께 기도할 믿음이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런 문제들이 기도하여도 해결되지 않아도 시험들지 않을만큼 믿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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