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에서 받은 세례(고전 10:1-4)
2025년 11월 2일 주간목장교안
1. 지난 주 세례식을 기해 세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 보았다. 특별히 홍해 사건을 세례라고 설명하는 바울사도의 말에 따라 세례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모세가 그들을 찾아가기까지 그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고, 거기서 그들은 없애버리기로 작정된 자들이었다. 그러기 위해 이집트의 파라오는 그들을 가혹한 노동으로 혹사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산파들에게 지시해서 히브리 여인이 사내아이를 출산하거든 그 자리에서 죽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니 그들은 거기서 죽도록 일만 할 뿐, 아무런 보람이나 성취나 미래가 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구원받기 전 우리들의 상황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파라오에 의해 강제되고 혹사당하던 그들의 모습은, 죄의 왕노릇 아래서 죄의 종으로 살던 우리의 모습을 그려준다. 성경이 그런 그림을 통해 암시하는 것은, 우리가 저지르는 죄는 단순히 우연이거나 실수가 아니라 우리 안에 세력으로 존재하는 죄의 엄청난 왕노릇의 결과라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죄인 안에 있는 엄청난 불안과 두려움, 공허를 통해 우리를 헛된 수고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그들의 관료를 내세워 히브리인들을 무의미한 노동에 내몰았듯이, 죄는 불안과 결핍, 갈망 등을 관료로 내세워 우리를 지배했던 것이다. 경쟁에서 뒤처질까 하는 두려움이 나의 등을 채찍으로 내리치는 파라오의 관료일 수도 있고, 애정 결핍이 또 다른 관료일 수 있다. 그것들이 우리를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하며 죽도록 강제 노동을 시킨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을 고달프게 하고, 많이 수고하나 남는 것이 없는 삶이 되게 하는 것이다.
질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기 전에 죄는 우리를 좌우하는 파라오였다. 그것은 우리 안에 약점(불안이나 두려움이나 결핍)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고 좌우했다. 당신에게도 주님을 깊이 만나기 전 당신을 지배하고 좌우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는가(지배적 감정, 지배적 두려움이나 불안)? 그래서 돌아 보면 당시에는 당신이 자주적으로 선택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당신이 무언가에 지배당한 경우는 없었는가? 불안이든 경쟁심이든 증오든 자기 연민이든 .... 그 때 당신에게는 무엇이 파라오였다고 생각하나?
2. 구약의 그림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보낸다. 모세는 하나님의 특사로서 거기 가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셨으며 그들을 위한 계획을 이제 실행하려 한다는 것을 전했다. 그리하여 그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세를 따라나선다. 그리고 그들은 다 모세에게 속하여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넌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구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을 바울은 그들이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받는 세례를 그들이 홍해를 건넌 것에 견주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인데 ...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홍해를 건넌 그 사건에서 두드러진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기적적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 파라오가 그들을 풀어주게 된 것도 기적이지만, 바다를 가름으로써 이스라엘이 홍해를 걸어서 건넌 것도 기적이다. 이 모든 것은 죄에서 해방되는 그것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기적적 사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설교 때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죄를 모른다. 우리가 아는 몇 가지 죄가 우리 죄의 전부가 아니며,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만큼의 죄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며, 특히 우리가 사는 시대의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죄의 경우에는 그것이 죄인지 눈치도 채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길이 없다.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죄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본성은 오염되고 망가져 있어서 죄의 낙을 사랑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죄의 왕노릇 하에 있는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죄에서 해방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이 우리를 죄의 통치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질문) 당신은 당신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기적임을 인정하는가?
3. 또 홍해를 건넌 사건이 세례에 대해 암시하는 두 번째는 구원은 홍해 전과 홍해 후, 이렇게 두 세계의 삶으로 명확하게 나뉜다는 것이다. 한 세계는 죄가 왕노릇하는 죄악된 세계요 다른 세계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 감사로 갱신된 삶이 있는 곳이다. 당시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세례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도 세례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의 그 그림에서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길은 홍해를 건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홍해를 건너는 방식이 배 타고 건너는 게 아니고, 홍해바다 바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 때 그 그림에서 홍해는 죽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홍해 저편으로 나왔지만 은혜를 입지 못한 애굽의 병사들은 다 거기서 수장되었다.
바울이 그것을 세례라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세례 또한 한 세계에 대한 죽음이요 다른 세계에서 생명을 얻음이라는 것이다.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사는 것이요, 한 세계에서 주민등록을 말소하는 것이요, 다른 세계에 그것을 생성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홍해를 건넌 사람은 홍해 저편과는 아무 상관이 없듯이, 예수 믿고 세례받은 자의 삶도 이전에 즐기던 죄악된 삶과 아무 상관이 없어야 정상이다. 홍해를 건넌 사람은 이제 더 이상 홍해 저편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세례받은 사람도 이제 더 이상 이전에 즐기던 죄의 자리에서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게 정상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옛 죄의 낙을 계속하려 할 때마다 계속해서 우리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 “홍해를 건넌 네가 자꾸 홍해 저편에서 발견되는 것은 너무 이상한 일이야!” “이건 잘못된 일이야!”
질문)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혹시 이전에 즐기던 죄악된 자리에 종종 출현하는 상황은 아닌가? 당신의 삶도 점점 더 홍해 이전의 삶과 홍해 이후의 삶으로 나뉘고 있는가?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 24 | 2025년 11월 9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11-12 | 42 | |
| 23 | 2025년 11월 2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11-05 | 39 | |
| 22 | 2025년 10월 26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10-29 | 71 | |
| 21 | 2025년 10월 19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10-22 | 66 | |
| 20 | 2025년 10월 12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10-15 | 75 | |
| 19 | 2025년 9월 21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9-24 | 124 | |
| 18 | 2025년 9월 14일 목장 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9-17 | 124 | |
| 17 | 2025년 9월 7일 목장 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9-10 | 131 | |
| 16 | 2025년 8월 31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9-04 | 118 | |
| 15 | 2025년 7월 6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7-09 | 159 | |
| 14 | 2025년 6월 29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7-02 | 162 | |
| 13 | 2025년 6월 22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6-25 | 166 | |
| 12 | 2025년 6월 15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6-18 | 188 | |
| 11 | 2025년 6월 8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6-11 | 167 | |
| 10 | 2025년 6월 1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6-04 | 15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