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교안

2025년 6월 22일 목장교안
2025-06-25 11:54:44
평촌새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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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니  (마태복음 5장 10-12절)

 


                                                                                                                                     2025년 6월 22일 주간목장교안

   1. 지난 주일 말씀은 팔복 중의 마지막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에 대한 말씀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팔복의 말씀 중에 맨 마지막이 핍박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에 약간 갸우뚱하게 된다. 팔복의 마지막이면 복 중의 복, 누가 보아도 최고의 복일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핍박이라니 ... 그런데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행복한 자들이구나!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여!” 핍박이 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으로서는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게다가 팔복의 과정을 밟아 온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해 긍휼의 마음도 가지고 있어서, 화평케 하는 사람(Peace-Maker)으로서 세상 속에서 역할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텐데 ... 그런 아름다운 사람도 핍박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 두 문제 중에 두 번째 문제부터 먼저 생각해 본다. “팔복의 과정에 따라 변화된 아름다운 사람도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는 세상이 선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세상은 팔복으로 빚어진 사람을 환영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세상은 오히려 그들을 거부한다. 팔복의 과정이 철저하게 진행되면 될수록 더욱 그렇다. 그 단적인 예는 팔복의 사람이 화평의 사람으로 빚어져 정치 공간에 나가서 양측을 중재하거나, 좀 더 온건하고 대화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는 경우를 생각만 해보아도 알 수 있다. 세상이 그를 받아들일까, 받아들이지 않을까? 세상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람은 받아들여지기보다 오히려 양측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이다. 이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세상은 그렇게 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은 어느 정도의 선은 좋아하지만, 참된 선, 진정한 선은 미워한다. 무엇을 보면 아는가? 이 세상이 예수님을 처형한 것을 보면 안다. 그들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에 누구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모두는 예수님을 못 박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원래 한 편이 아니면서도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는 하나가 되었다. 무엇을 말해 주는가? 세상은 예수님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그대로 두고는 편하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되, 급진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할까? 대답은 뻔하다. 대충 선하면 받아들이지만, 참으로 변화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철저하게 따르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조롱하며 냉소할 것이다.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이 너무 밝은 빛 때문에 샅샅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0).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팔복으로 아름답게 빚어진 사람도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을 어떻게 복되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도 생각해 보자! 사실 이런 말은 아무에게나 이해되는 말이 아니다. 이것이 이해되고 공감되려면,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한 가지를 공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나라의 영광과 확실함에 대한 확신이다. 그들이 그것을 확신한다면 그들에게 고난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 그것은 특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고난은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바울은 그런 확신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는 수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고난은 무거운 것이지만 영광스러운 미래가 확실하면 무거운 고난도 가벼워진다. 그래서 견딜 수 있다. 바울의 또 다른 말을 참조해 보라.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영광스러운 미래가 확실하면 오늘 겪는 고난의 시간도 ‘잠시’가 되고 그 무게도 가벼워진다. 따라서 여덟 번째 복의 말씀이 내게도 공감이 되고 아멘이 되려면 먼저 우리 안에 그런 확신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이 복을 논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성경은 곳곳에 이해가 안 되는 일, 공감이 안 되는 일로 가득한 책일 뿐이다.

   주님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되다고 하신 이유는 의를(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미 엄청난 은혜 안에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은 그저 타고난 성품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복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복된 두 번째 이유는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그런 모습은 그들이 이미 천국 백성임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핍박을 받음으로써 천국 백성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기꺼이 핍박을 받는 그것이 그가 이미 천국 백성이라는 증거라는 것이다. 바울이 주님을 위해 그처럼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으면서도 그 먼 길을 가서 복음을 전한 것은 그가 이미 천국 백성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증거다. 
질문) 당신은 천국 백성인가? 당신에게도 증거가 나타나고 있는가? 몇 가지 정도의 증거가 나타난다고 생각하는가? 팔복의 단계를 참고하면서 말해 보라!

   2. 또 하나 기억할 것은 팔복은 핍박과 시련이 참 신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과정임을 암시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팔복의 다른 것들이 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예외없이 해당하는 과정인 것을 보아 짐작할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함, 애통함 등 다른 모든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한다고 하면서 이것만은 일부의 어떤 사람을 위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바울도 말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주님은 박해를 받을 때에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 그냥은 불가능하다. 그냥 기뻐하라고 기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성경에서 기뻐하라고 할 때에는 반드시 그럴 이유를 주셨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 이유를 찾아보아야 한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그럴 때 기뻐할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서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지금 우리 이전의 선지자들(주님의 사람들)과 정확하게 같은 노선을 걷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질문) 당신은 순종하려다 받은 시련과 고난이 있었는가? 그러는 중에 문득 당신이 옛 믿음의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깊은 위로를 받은 일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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