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안에 정직한 영을 창조하소서 (시편 51편 1-12절)
2025년 3월 30일 주간목장교안
지난 주일은 “심령의 가난함과 애통함”과 관련하여 시편 51편을 살펴보았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는 다윗의 심령이 어떻게 가난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의 가난한 심령에는 어떤 깨달음이 담겨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1. 시편 51편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나단 선지자가 찾아온 후에 기록한 시편이다. 그때 그는 말할 수 없이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는 남몰래 아주 야비한 죄를 저지르고, 아무 일 없는 듯 생활하고 있다가 나단 선지자로 인해 그 일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던 것이다. 어제까지 이스라엘의 도덕적 얼굴이었던 그가 사실 뒤로는 말할 수 없이 야비한 일을 저지르고, 살인까지 저지른 자였다니 엄청나게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이렇게 이 시편의 배경을 알고 나면 우리는 놀라게 된다. 다윗처럼 경건한 성도의 삶에 이런 엄청난 죄가 있었다니 말이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사람, 찬양이 솟아나던 사람, 홀로 용감하게 골리앗을 맞서던 사람, 그런 경건한 믿음의 사람의 속에도 이런 숨은 모습이 있다니... 놀라운 것이다. 그는 그 죄를 범한 후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어떻게 하루하루를 지냈을까? 예배를 드리지 않았을까? 성경을 읽지 않았을까? 찬양을 하지 않았을까? 국사를 논하며 정의를 시행하지 않았을까? 다 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인간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또한 그렇지 않을까? 우리 또한 주일이면 이렇게 멀쩡하게 예배당에 올라와 예배를 드리지만, 그러나 예배 드리는 우리 안에도 얼마나 많은 죄가 고백되지 않고 잊혀지고 있을까? 무슨 잘못된 일에 대한 보도가 나오거나, 누군가의 잘못을 보면 우리는 너무 쉽게 정의를 말하고 주먹을 들지만, 사실 우리가 정의를 말하는 그 순간, “세상에 이런 놈들이 있나!”라며 분노하던 그 순간에도 우리 안에는 얼마나 많은 부정의와 불공평, 생각 없이 누린 부당한 특권들이 숨겨져 있을까?
질문) 설교 중에 이 대목을 들을 때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특별한 생각이 있었는가? 다윗의 경우 그 범죄가 좀 극단적인 점은 있지만, 그러나 우리도 다윗과 다름없이 무감각하며, 위선적이고, 뻔뻔스러우며, 따라서 우리도 그럴 수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2. 자신의 범죄를 잊고,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자신의 정의감에 도취된 다윗의 심령은 나단 선지자의 말로 인해 낮아지고 가난해진다. 선지자가 찾아왔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말씀이 우리 심령에 임했다는 말과 같다. 우리의 심령은 스스로는 가난해질 수 없고, 주님을 만날 때만 가난해질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러나 그것이 꼭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주님을 만난 경험이나 이사야가 성전에서 체험한 것과 같은 그런 신비적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체험 없이도 말씀을 듣는 중에 주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이 나단을 통해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요!”라고 하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 중에 “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자신을 직면할 수 있다.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모습, 결코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 사건을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정의를 외쳤지만 실제는 불공정했던 나, 거룩한 듯 폼 잡고 외치나 실제로는 부정했던 나를 보며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이다.
질문) 당신은 말씀으로 인해 그 앞에 깨어진 적이 있는가? 그때 당신을 깨뜨린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3 보통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지적받으면 우선 화를 내며 부인하거나 변명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변명이 불가능해지면 잠적하거나, 술을 마셔버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출하여 비틀거리며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이 뜨겁게 임하면 우리는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며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죄에 대해 각성이 깊어지면서 심령이 가난해진다. “뭐 우리나라에 그런 놈이 있다고?”라고 말하던 다윗의 헛된 정의감은 “하나님 나 같은 죄인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으로 바뀐다. 1절의 고백이 그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없이는 자신은 주님께 나올 수 없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죄인을 향해 변치 않는 사랑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면 자신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고백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더 깊어진다. 시편 51편 1, 2, 7절에서 자신은 자신의 죄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주님이 자신을 깨끗케 하지 않으면 자신은 결코 자신을 깨끗케 할 수 없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라고 고백한다. 자신의 죄가 항상 자신 앞에 있다는 말은, 성령이 그에게 자신의 죄에 대해 각성하게 하신 후에 그는 어느 한순간도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말이다. 죄는 하나님 앞에 다루어질 때까지 결코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시 32:3-4). 심령의 괴로움, 애통함 그것은 우리의 죄를 처리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윗의 심령은 더욱 예민하게 깨어난다. 그는 고백한다. 자신의 죄는 단지 사람에 대한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행해진 범죄였다는 것을! 자신의 행위는 단지 상대방의 인격을 짓밟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훼손한 것이었음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깨달아가니 하나님 앞에 자신은 더 이상 변명하거나 변호할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옳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의 죄인됨은 뿌리가 깊어, 모태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는 어쩌다 그 여자가 옥상에서 목욕했기 때문에 일어난 범죄가 아니라, 그보다 먼저 자기 안에 일그러진 욕망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질문) 죄에 대한 다윗의 점점 더 깊어지는 인식, 그로 인한 다윗의 심령의 가난함과 애통함을 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당신은 이 세상의 사람들의 죄책감과 신자의 죄책감은 어떻게 다르다고 느끼는가?
4. 이렇게 깨달음이 깊어지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닫기 때문이다. 다윗도 여기서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그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아는 몇 가지 죄만 용서받으면 되는 존재가 아님을 보았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정한 마음’이다. 하지만 자기 안에는 정한 마음이라고는 없기에 그는 하나님에게 자기 마음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주시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는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에게서 성령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 다윗은 자신은 죄를 씻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안 되고, 정한 마음을 창조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안 되고, 자신에게 반드시 성령이 계셔야 함을 고백한다. 이것은 놀라운 고백이다.
질문) 여러분은 어떤가? 여러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셔야 한다는 것을 고백하는가? 더 나아가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래서 간절히 성령을 구하고 있는가?
5. 그렇다면 이렇게 가난해지고 애통하게 된 다윗에게 주어진 위로는 무엇일까? 다윗에게 주어진 위로는 문득 깨달아진 진리다. 17절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그는 신약 성도나 깨달을 수 있는 위대한 진리를 구약 시대에 깨달았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필요한 것은 상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죄와 죄의 결과의 비참함, 죄인됨의 깊이, 무능함을 보면서 자신에 대해 깊이 실망하고 상한 마음,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이 받으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구약의 수많은 제사는 물론 필요하지만, 제사를 드리는 자가 그 앞에 나아갈 때 상한 마음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제사와 제물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신약에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제물,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상한 마음이다.
질문) 당신은 이 진리를 이해했는가? 그리고 늘 상한 마음을 준비하고 나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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