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발을 씻기라 (요한복음 13장 1-14절)
2025년 4월 13일 주간목장교안
1. 지난 주일 성찬에 앞서 살펴본 말씀은 요한복음 13장이다. 요한은 13장을 이런 말로 시작한다. “예수께서 ...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 말씀은 왠지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말씀이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단지 시간의 길이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 말은 자기가 택한 사람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 도중에 돌발하는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을 실망시킬 때에도 그것 때문에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는 사랑, 그런 사랑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3년 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그 세월과 헌신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은 일이 많았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도 제자들은 주님 뒤에서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다투곤 했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 실망스런 모습이 나타났지만, 그러나 그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성경이 끝없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사실 제자들이 끝내 위대한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그런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 포기하지 않으심 안에서 그들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다. 이 점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질문) 당신은 어떠한가? 주님이 당신을 그런 사랑으로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당신의 오늘은 가능했겠는가?
2. 오늘 본문에서 교만한 마음 때문에 남을 섬기지 못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들은 일과를 마치고 만찬을 위해 모였다. 하루 종일 밖에서 생활했기에 발은 더럽고 먼지투성이였을 것이지만, 누구 하나 씻을 물을 떠 오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물을 떠 오면 여럿이 씻을 수 있을 텐데, 다들 남이 떠 오는 물로 발을 씻을 생각은 있어도 자기가 물을 뜨러 갈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물을 떠 오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아무도 발을 씻지 못하고 있었다. 3년을 가르치고도 이런 상황을 맞은 주님은 조용히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와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당시의 종들의 모습이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십자가를 통해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기 전에 이 땅에 남아 있을 제자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부탁하시려는 것이었다. 아무도 발을 씻지 못하여 온 방에 발냄새가 가득 차 있는 데도, 서로 자존심만 내세울 뿐 먼저 일어나 섬기려 하지 않는 그들을 보며 이런 방식으로 그들에게 서로 겸손히 섬기도록 부탁하려는 것이었다.
질문)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을까? 나 자신도 입으로는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자신을 낮추지 못하여 누구도 섬기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방치된 일은 없을까? 우리 교회 안에도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섬겨야 하는데, 다들 외면하기에 일손이 부족한 봉사의 자리는 없을까?
3.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이제 곧 있을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제자들에게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공동체를 이루라고 부탁하기 위함이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 같이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말은 너희 곁의 동료의 “냄새나는 발”을 감당해 주라는 것이다. 그 냄새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거나 무안하게 하는 말을 하지 말고 주님이 종의 모습으로 섬기며 씻어 주신 것처럼 겸손히 감당하며 씻어 주라는 것이다. 여기서 발은 매일의 일상에서 더러워지는 우리 자신, 씻지 않으면 냄새가 나는 우리 자신의 약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존재는 이미 깨끗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지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불완전함이 남아 있고, 그런 불완전함을 가지고 청계천과 을지로, 인덕원과 범계역 주변을 돌아다니며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우리는 더러워짐을 피할 수가 없다. 매일 우리의 거룩성은 훼손되고 영적 감수성은 무디어진다. 주님은 그런 상황에서 매일 씻음을 받아야 할 우리 자신을 “발”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한편 주님의 피흘리심으로 씻음 받고 구원받은 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주님으로부터 “발”을 씻음 받아야 하는 자들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종처럼 우리의 발을 매일 씻어 주셔야 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이런 영적 진실을 알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이 되겠는가? 겸손해지며, 우리도 형제와 자매의 더러운 발을 섬겨줄 수 있게 된다. 우리로서는 형제와 자매의 냄새 나는 발을 감당할 수 없지만, 우리가 매일 주님께 우리의 발을 맡길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안다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질문) 당신은 매일 주님으로부터 발을 씻음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고 있는가? 본문에서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 그것이 사실은 매일매일 당신에게 일어나야 하는 일(영적 상황)이라는 것을 아는가? 당신은 당신 주변의 형제들과 자매들의 “냄새나는 발”을 감당해 줄 수 있는가?
4. 주님이 발을 씻기자 베드로는 당황해서 외친다. “주님, 어찌하여 주님이 저희의 발을 씻기십니까?” “안 됩니다. 내 발은 절대 안 됩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자신이 매일 하나님의 발 씻어 주심이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에 관해 별로 전할 메시지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칫 종교적 행위를 잘하고 예의 있는 사람이 되면, 괜찮은 신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베드로처럼 주님의 발 씻어 주심 앞에 황망해하며 사양하는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의도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나,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나라는 존재는 매일 하나님의 아들의 섬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자기가 그런 존재인 줄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할 말을 갖게 된다.
질문)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은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더 잘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교회가 요구해 온 신앙적 행위들을 잘하면서 교회 안에서 예의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자신은 매일 하나님의 발 씻어 주심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인가? 당신은 몸에 익은 종교 행위와 인간적으로 예의 바름이 신앙의 올바름과 다른 것일 수 있음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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