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교안

2025년 9월 14일 목장 교안
2025-09-17 17:43:18
평촌새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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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에서 깨달은 것(2) (시편 73편 1~3, 16~28절)

2025년 9월 17일 주간목장교안

1. 지난 주일 우리는 시편 73편의 마무리 설교를 들었다. 이 경건한 구약 성도는 악인의 형통함 때문에 거의 실족할 뻔했지만 그런 중에도 성소에 올라가기로 하는 중요한 결정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고는 간신히 신앙을 회복했다. 시인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에게 이 과정이 힘겨웠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이해하는 일은 어느 하나 쉽지 않다는 거다. 그의 선하심 하나만 해도 그렇다. 주님은 선하시지만 그 선하심은 아주 심오하기 때문이다. 옥에 갇힌 요셉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렵겠나 말이다.
질문) 혹시 당신은 지금 그런 상황에 있지 않나? 혹은 과거에 그렇지는 않았는가?

2. 시편 73편 저자가 고백하는 이런 경험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그가 겪은 그런 일은 단지 그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처음 믿을 때,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말은 ‘텅 빈 상태’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그 때 우리 머릿 속은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은 없으면서도 그분에 대한 제멋대로의 생각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당시 우리의 믿음은 불순물이 가득한 금광석처럼 정제되고 정련되어야 할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정련될까? 우리의 믿음은 시간과 사건을 통해 정제되고 정련된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는 기존 믿어왔던 것이 흔들리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단순하게 믿어 온 것과 어긋나는 상황,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도 저렇게 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가 어긋난 상황, 절박하게 기도했으나 거절당한 것 같은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신자에게 그런 일은 단순히 불행한 일이나 고통스런 사건이 아니라 믿음을 정제하고 정련하는 과정이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신앙은 정금 같이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심하게 흔들려 신앙을 잃을 것 같은 상황도 생기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었던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믿음의 사람들의 삶은 다 그랬다. 다 긴 정화와 정련, 성숙의 과정이 있었다.
질문) ①동일한 이야기를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나오미의 생애를 가지고 한번 설명해 보라.
②당신의 삶 속에서 신앙의 흔들림을 통해 순도 높은 신앙에 이르게 된 경험이 있는가?

3. 생각하던 바와 너무나 다른 현실 앞에 신앙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던 시인은 고통 중에도 극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성소로 올라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문제를 안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기로 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 주셨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편 저자의 이 고백은 성소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 준다. 그것은 깨달음이다. 성소에 올라갈 때 많은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달음이다. 깨달음이 중요한 이유는 깨달음은 느낌과 달라 곧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편의 저자는 성소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물론 ‘악인의 결국’도 거기에 포함된다. 악인들의 삶은 일견 평탄한 것 같아 보였지만 그들의 형통은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는 마음을 만들어내어 자칫 멸망으로 직행하는 미끄럼틀 강이 되곤 했던 것이다(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렇게 악인의 결국을 깨닫는 것도 유익한 일이지만, 그러나 시인은 특히 자신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깨달았다.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자신의 어리석음이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 눈이 열리니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자신의 지혜가 하나님에 관해 생각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욥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해 눈이 열린 후에는 이렇게 고백했다.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그는 자신이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복주심을 이해해 왔고, 그러다 보니 바라는 것도 그들과 같고, 자랑도 그들과 같아 자연스레 그들의 형통함과 자랑에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음이 온통 질투와 슬픔과 자기 연민으로 범벅이 된 것은 하나님이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이었다. 그는 그런 자신이 마치 짐승과 같았다고 고백한다. 생각 없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반응하여 으르렁대는 모습이 지각없는 짐승 같았다는 것이다.
질문) 당신도 신앙적 어려움 속에 나아가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에 관해 눈이 더 크게 열린 경험이 있는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에 대해 깨닫고 문제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가?

4. 자신이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자 번뜩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22절과 23절이다. 23절은 우리 말 번역에 문제가 있다. 좀 더 옳은 번역은 “(내가 . . . 짐승이오나) 그럼에도 내가 지금도 이렇게 주님과 함께 있음은 주께서 (그동안) 내 오른손을 붙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이다. 자신이 지각없는 짐승같이 우매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시인에게 번뜩 든 생각은 “그렇다면 그렇게 우매한 내가 지금도 하나님을 믿고 있는 건 어째서일까” “어리석음이 나를 주장했다면 나는 벌써 하나님 곁을 떠났을 것인데 그런데 나는 어떻게 지금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게 되었을까?”라는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성경의 모든 사람들도 다 그런 은혜를 힘입어 세워진 것이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 그들의 처음과 나중을 비교해 보면 이는 명확했다. 신약의 바울 또한 그러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지 않았던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질문) 당신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당신도 살아오면서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나? 돌아보면 불신앙에 떨어져 버릴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때 당신의 인생이 영구히 절름거리게 되지 않고 이렇게 주님을 믿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5. 이것을 깨닫게 되니, 그 깨달음에 이어 놀라운 깨달음이 따라온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다. 하나님이 내가 그토록 무지할 때 나를 붙들어 주셨다면,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실망하고 분노할 때 그 일이 신앙을 잃는 일이 되지 않고 오히려 눈이 열리는 일이 되게 하셨다면,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내가 짐승같을 때도 나를 붙들어 주셨다면, 깨달음을 통한 주님의 인도하심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 결말은 주님이 영광 중에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 될 것이다. 시인은 바로 그런 고백을 24절에서 한다.  
 시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놀라운 말이다. 깨달음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러나 깨달음이 우리가 받는 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시각의 변화도 우리가 받는 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최종 목표를 위한 것인데 그것은 우리 모두가 주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는 것이다. 위에 말한 모든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해 준비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다 책임지신다. 무얼 보면 아나? 짐승 같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오신 것을 보면 안다.
질문) 당신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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