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있을 세 가지-3 사랑① (요한일서 4:1-11)
2024년 6월 30일 주간목장교안
(다음 주간 모임 후 목장 방학에 들어갑니다!)
1. 지난달까지 말씀드린 것은 믿음이나 소망이라는 말은 비기독교인도 사용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그들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더러 근거 없이 고집스럽게 무얼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그런 것은 그들이다. 그들이 윤회를 믿는다고 할 때, 혹은 새해 첫 아림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소원을 빌 때, 무슨 근거가 있어서 그리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투사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 점은 그들의 소망을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소망은 불확실한 미래에 관해 그들이 바라는 것, 그렇게 되기를 희망해 보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게 되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그냥 그렇게 바라는 거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믿음과 소망은 다르다. 우리의 믿음은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그렇게 믿는 게 마음이 편해서 믿는 그런 게 아니다. 그렇게 믿는 게 마음이 편하기에 천국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란 말이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다 해서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믿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인간에 뭔지 인간은 왜 다들 결국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는지 처음부터 얘기해 주시고 또 그것에 대해 하나님이 가진 생각이 뭔지, 어떻게 하려 하시는지 다 말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믿을 수 있게, 약속하신 것들을 성취해 주신 것이다. 큰 민족이 되리라 하더니 큰 민족이 되게 하셨고, 그 땅을 차지하리라 하시더니 끝내 차지하게 하신 것이다.
질문) 이미 생각해 본 것이지만, 다시 한번 나누어 보자. 당신은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게 비기독교인들의 그것과 다름을 이해했는가?
2.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특징도 바로 거기서 나온다. 그것의 특징은, 이루어질 것이 너무 확실해 지금 여기서 벌써 바라며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말씀하신 분이 신실하고 확실하여서 그렇고, 또 이미 이루어진 일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증하기 때문에도 그렇다. 이렇게, 우리의 소망은 근거 없이 바라고 믿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소망보다도 더 근거가 확실한 소망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의 믿음과 소망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 소망의 특징은 세상의 그 어떤 소망보다 그 내용이 풍성하고 자세하다. 세상의 소망들은 확실한 것이 아니기에 내용도 빈약하다. 그것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다. 하지만 기독교의 소망은 다르다. 우리는 그 확실한 소망 안에서 창조와 섭리의 완성을 볼 것을 기대한다. 룻이나 보아스는 그들대로, 바울은 바울대로 나는 나 대로 내 인생에 주님이 역사하신 일들이 결국 무엇을 이룬 것인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역사의 완성도 보게 될 것을 기대한다. 그 날에 우리는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 공동체에 들어가 그것의 일부가 되는 것을 볼 것이다.
질문) 그리스도인은 이 믿음과 소망의 능력으로 오늘을 사는 자들이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도 자신이 그렇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 당신은 이처럼 섭리와 역사의 완성을 기대하는가?
3.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서 어떨까? 사랑 또한 이 세상 사람들도 누구나 말하는 것인데... 하지만 그 사랑 또한 그들이 말하는 사랑과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다른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어떤 점에서는 같고 어떤 점에서는 다르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고, 인간은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사랑이 없다면... 사랑받은 경험도 없고, 사랑할 사람도 없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도 없다면 우리는 마음이 병들고 시들어 죽음에 이르고 말 것이다. 사랑받은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정립할 수도 없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조차 없어, 끝없이 자신을 냉소하며 학대하여 함부로 굴리고 방황하다가, 성급하고 잘못된 수많은 선택을 함으로써 자기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녀 가족 친구 등 그가 관계하는 모든 관계에서 사랑을 추구한다.
질문) 당신도 사랑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4. 그런데 사랑에 관한 한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의 공통점은 거기까지다. 우리에게 사랑이 필수적임을 인정하는 것, 거기까지 우리는 견해를 같이 한다. 하지만 세상은 모른다. 사람에게 사랑이 왜 필수적인지... 그것이 왜 인간의 중요한 특성이 되었는지... 그들은 단지 관찰에 의해서 그렇게 결론 지을 뿐이다. 나도 외롭고 너도 외롭다는 것,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이 사는 인생을 보면서 그것이 필수적인 것을 알 뿐이다. 그러나 왜 인간은 존재의 뿌리로부터 그러한지 알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에는 누가 있는지, 어떤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원래 성경 없이는 모르는 거다. 사실 사랑뿐 아니라, 인간에 관한 모든 게 다 그렇다. 인간의 집착, 종교성, 존엄성 모든 게 성경 없이는 설명이 안 된다. 사랑도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사랑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왜 인간의 본질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이 말해 주기 때문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을 깊이 보면 그 하나님은 삼위(三位)가 하나인 하나님, 삼위가 일체인 하나님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사랑이심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모양과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인간 또한 존재의 가장 깊은 특징이 사랑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처음부터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 사랑할 때 가장 자연스런 존재로 지으셨다는 말이다.
질문) 당신은 성경이 이렇게 존재의 뿌리로부터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듣고 있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서 말씀하실 때 사람들이 그 권위를 보고 놀랐다고 하는데 당신은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데에서 성경의 권위를 느끼는가? 당신은 사랑 또한 매우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음을 느끼는가?
5.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만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인간 창조의 목적을 말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왜 창조하셨을까? 물론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려고 하신 것은 맞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일 시키려고 창조하신 게 아니라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 때문에 창조하셨음을 말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가족이 되게 하기 위해 지으신 것이지 그분의 정원사로 창조하신 게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행복에 참여하고 그것을 상속할 존재로 창조하신 것이다. 지으신 만물은 그런 지위와 관계에 따라 오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이것을 그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전에 기도한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그런 존재로 지으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관해 여전히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들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여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지…. 등등
질문)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당신은 당신의 신앙 때문에 당신의 사랑이, 그 성격에 있어서나 범위에 있어서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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