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있어 우리가 다른 점 (요일 4:10~11)
2024년 7월 7일 주간목장 교안
(이번 주간 모임 후 목장 방학에 들어갑니다!)
인간에게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이 왜 그토록 사랑이 필요한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이 왜 그렇게 사랑을 갈망하는지도 모른 채 사랑을 갈망한다. 그러다 보니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 사랑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냥 자신의 가족, 친구, 연인 등 자기를 중심으로 한 좁은 범위의 사람에 대해 애착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를까? 사랑을 말할 때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랑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의 사랑에 남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이 점에 대해 핵심을 찌르는 말이 성경에 있다. 그것은 요일4:19이다.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 요한이 요일4:19에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은 자신들을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먼저 사랑했다>는 말은 누가 먼저 사랑했는지 그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선제적으로 사랑했음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사랑할 가치나 이유가 전혀 없고, 우리가 그분께 구원이나 사랑을 요청한 일도 없는데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우리에게서 사랑할 만한 조건이 조금이라도 생기거나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선제적으로 사랑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한 사랑은 그와 같은 사랑이다. 그런데 요한의 이 말에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이 놀라운 사랑에 큰 충격을 받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음에 사랑의 씨앗, 사랑의 영향이 심긴 사람들이다. 그것은 마치 여성의 자궁에 생명의 씨가 착상되듯이, 사랑의 씨앗이 우리 마음에 착상된 것이다. 마치 여성의 자궁에 착상된 생명이 당장은 그 모양이 현저하게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그 안에서 점점 자라, 언젠가 구체적인 한 인격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안에 착상된 그 사랑도 그렇게 차츰차츰 자라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고, 그 결과로 사랑하게 된 자들이다. 그저 교회에 나와 앉아 있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질문) 우리는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인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당신은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 먼저 사랑하신 이 사랑을 알고 있는가?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깊은 감동이 된 적이 있는가? 그 은혜와 사랑에 대해 깊은 감사를 고백하며 사는가?
2.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그 사랑을 경험하니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마음에 변화가 왔다.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사랑하던 사람만 사랑하던 우리의 마음에 질적 변화가 온 것이다. 사랑의 대상과 범위와 질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는 사랑의 대상이 단순히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 애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 대상까지도 확장된다. 먼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받을 아무런 자격도 없는 자신을 사랑하되, 내게 사랑할 만한 조건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나를 사랑하신 사랑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탈북자들,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의 국기를 존중하고,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이토록 중요한 믿음도 사실 그분의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사랑의 계획과 그 사랑의 끈질김과 포기하지 않음이 우리 안에 믿음을 발생시킨 것이다.
질문) 당신에게는 이런 의미의 사랑, 하나님에 대한 이런 사랑이 있는가?
3. 우리의 사랑의 대상에는 우리의 이웃도 포함된다.
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전에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었던 우리의 이웃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게 된다. 우리가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분을 알고 보니, 그분 품에 그분이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분이 우리의 이웃들도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계시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햇빛과 비를 차별 없이 내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분을 사랑한다는 우리가 그분이 품고 사랑하고 계신 그들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만 사랑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 또한 그분에게 아무 상관 없이 살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사랑하신 것이다. 질문) 당신은 당신의 이웃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우리 이웃이나 우리 이웃의 공동체에 대해 너무 무심한 것은 아닌가?
3. 우리의 사랑이 향하는 세 번째는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다. 그들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는 주님이 요13장에서 말씀하셨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은 그들에게 사랑을 명하시면서 그것을 새 계명이라고 부르셨다. 그렇다면 무엇이 새롭다는 것일까? 사랑은 옛날부터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던 것이 아닌가? 새로워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랑의 기준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서로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듯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물론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 기준에 미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포기하고 좌절할 일은 아니다. 주님은 이것을 우리가 끊임없이 비교하고 묵상하며 전진해 가야 할 목표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지, 우리를 정죄하고 판단할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기억하자. 요한은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위와 같은 의미에서 사랑하는 자가 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사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인가...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아는가 모르는가에 대해 판단할 중요한 기준이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아는 자이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라고 말해도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것도 말할 수 없이 순도 높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그분을 안다고(친밀하게 안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지 아는 것일 수 없다.
질문) 당신은 요한이 하는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의 말에 비추어 당신은 어떤 상태에 있다고 생각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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