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구원한 사랑 막 2:1~12
2024년 9월 15일 주간목장교안
1. 지난 주일은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보았다. 친구들이 그를 침상째 메고 온 것을 보면 중풍도 중증인 것 같다. 그것은 그 사람이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평생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았었던 그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와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한 사람과의 만남 때문이다. 그분과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그 일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친구들”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절망 중에 있는 그를 관심 있게 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주는 일에 관계하게 된 것이다. 비록 그 일 자체를 자신들이 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니 그런 놀라운 일에 관계하게 된 것이다. 성경에는 천사를 도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들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히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평소에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거다. 놀라운 일에 도구가 되고, 사용되는 것은 부지중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놀부 같은 신앙생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질문) 당신은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이나 되었는가? 그 세월 속에 당신은 변해 왔는가? 주님의 은혜로 인해 누군가의 삶을 돌아보는 측면이 강화되어 왔다고 생각하는가?
2. 감동적인 것은 마가는 주님께서 그들이 친구(이웃)를 메고 와서 지붕을 뚫고 내린 것을 보실 때 ‘그 행위에서 그들의 믿음을 보았다’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당시의 지붕은 걷어내자면 걷어낼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먼지 떨어지고 흙이 떨어지고, 마른 나뭇가지와 잎이 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집주인과 거기 모인 사람들의 비난과 눈총을 받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우리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깊이 생각할 일을 주님께서는 “믿음을 보았다!”고 한 하셨다. 우리 중에 대부분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가는 “믿음이 보인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일관된 성경의 관점이다. 우리는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믿음은 일종의 사유나 생각으로 여기고 믿음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믿음이나 사랑은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믿음은 그가 무엇을 바라고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그가 그것을 진짜로 바라기에 사는 삶이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그분이 계시기에 사는 삶이다.
질문) 그런 점에서 당신에게 믿음이 있는가? 당신의 삶은 당신이 그분을 믿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가? (삶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 아니다. 믿음은 삶으로 나타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3. 주님은 중풍병자를 보고 “네 병이 나았느니라”라고 하지 않으시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셨다. 주님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셨나? (10절)
4. <병을 낫게 하는 것>과, <주님이 죄사함의 권세를 가진 분(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둘 중 하나는 목적이요, 다른 하나는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질문) ①어느 것이 목적고 어느 것이 수단일까? ②우리는 이런 본문을 읽을 때 어디에 더 무게를 두고 읽어야 하겠나? ③성경에서 병 고친 이야기만 다 모아서 병 고친 이야기(능력 이야기)로 읽으면 얼른 보아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여도 결국 어떤 그리스도인이 될까? ➃성경을 성경적 논리를 따라 읽는 것과 성경을 내가 바라는 이야기로 다시 재배열하여 읽는 것, 그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텐데 ... 당신은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어떤 신자였는가?
5. 중풍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은 평소 그를 안타깝게 여기고 돌아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의 그 상황은 너무나 안타깝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들은 그 친구에게. 자신들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는 결과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주님을 만나게 함으로써 일어난 일이다. 전도는 그와 같은 것이다. 내가 도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주님을 만나게 함으로써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그에게 일어나게 하는 일이다(좁은 의미의 구원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구원까지). 본문 속에 곤경에 처한 그 사람에게 친구들이 가장 잘한 일은 그가 주님을 만나도록 자신들의 선한 삶을 통해 통로가 된 것이다.
질문) 당신은 이번 초청 주일에 누군가 당신이 도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을 초청하지 않겠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6. 성경에는 본인의 믿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믿음이 계기가 되어, 어떤 사람을 구원해 주시는 경우를 볼 수 있다(물론 결국 그가 믿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지만). 비록 나의 전도 대상자들이 믿음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심지어 아무 반응을 보일 수 없는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성경에서 친구나 부모의 믿음 있는 행위가 구원의 계기가 되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새롭게 도전해 보자.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중풍병자처럼 삶의 모든 부분에서 마비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너무 낙심되어 혼자 주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질문) 목장 식구들이 함께 그들을 데려올 방법은 없을까? 한 명을 전도하더라도 목장이 함께 할 수 방안에 대해 아이디어를 나누어 보자.
7. 기도하자
① 주변을 사랑으로 돌아보는 교회와 성도 되게 하옵소서. 고통 중에 있는 분들에게 오래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주님의 사랑을 부으소서.
② 단순히 교회를 채우기 위한 마음이 아니라 ... 그들이 주님을 만나 행복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도록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도 주일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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