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쓰시는 그릇 디모데후서 2장 20-22절
2024년 9월 22일 주간목장교안
1.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권면으로서 핵심은 “주인이 쓰시는 그릇이 되라”는 거다. 본문 뿐 아니라 성경이 종종 하나님의 백성을 그릇에 이유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방식과 관련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의 일군으로 사용하시되 무언가를 담아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고후4:7에서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했는데, 이 때 이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다. 다시 말해 복음이요, 참 생명이며, 그리스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릇으로 부르신 것은 복음은 우체부가 편지를 전하는 것처럼 그렇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편집배원은 삶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의 경우엔 단지 편지만 전달되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음의 메시지는 다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인격 속을 통해, 그것에 담겨서 전달된다. 그 속에 담기지 않으면 아예 전달자체가 되지 않는다. 복음은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한다고 전해지는 게 아니다. 우리 인격과 삶에 담겨야만 전달된다. 성경이 우리를 그릇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다른 묘사에서도 동일한 괌점에서 얘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의 말들은 어떤 점에서 비슷한 말인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각각이 어떻게 다른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설명해 보라!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
질문) 복음이 단순히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인격을 통해 전달된다고 했을 때, 내 삶의 어떤 부분이 복음의 메시지를 흐리게 만들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어떤 영역에서 더 성숙해져야 하는지 나누어보자.
2. 그런데 바울이 우리를 그릇에 빗대어 설명한 것은 또 다른 점을 설명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인이 그 그릇을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는 조건이 뭐냐는 것이다. 원래 큰 집에는 다양한 그릇이 있는 데 그런 중에도 그 그릇을 쓰고 쓰지 않음에는 그릇의 재질도 중요할 수 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 그릇이 깨끗한가?’라는 말이다. 사실 우리 생각에는 금그릇이 귀하고 은 그릇이 그 다음 귀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러나 사실 주인은 경우에 따라 다른 그릇을 사용하는 것이다. 무조건 금이라고 모든 것에 다 맞는 건 아닌 것이다. 금이냐 은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그릇이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냐는 것이다. 그것은 그 그릇에 무엇을 담으려는지를 생각해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마실 물을 담는데도 깨끗한 그릇을 선택할 것이다. 재료가 금인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금으로 만든 그릇이라도 씻지 않아서 음식이 말라 붙어 있으면 거기에 물을 담아 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실 물을 담는데도 그렇다면 영혼을 위한 생명수를 담는 데는 어떻겠나?
바울은 21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바울의 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리는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하게 준비되는 것이고, 쓰시는 것은 주인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과를 담아도 금 쟁반에 담을 수도 있고 나무 그릇에 담을 수도 있다. 그것은 주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는 왜 안 쓰냐고 말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는 교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도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게 옳다. 당신의 봉사는 그런가? 그렇다면 정말 귀한 봉사다.
질문) 교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일이 다를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교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며 섬기고 있는지, 아니면 내 욕심에 따라 봉사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나누어보자.
3.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이런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본문 앞에 나온 것들로, 당시 그릇된 교사들이 가르치던 그릇된 사상이다. 하지만 그릇된 사상들이 그때만 있었겠나? 오늘날도 있다. 그릇된 가치관과 사상들이 오늘날도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돈에 대한 잘못된 사상, 성에 대한 잘못된 사상, 신앙생활에 대한 잘못된 사상, 결혼에 대한 잘못된 사상, 자녀에 대한 잘못된 사상, 교육에 대한 잘못된 사상 등 잘못된 사상은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 주님은 우리가 이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이 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주님이 쓰시기에 준비되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우리라는 인격의 그릇에 온갖 더러운 그런 것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면 주님은 그런 그릇을 쓰실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편지라 했는데 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읽어지지 않고 온갖 세상의 불순물들이 읽히면 어떻게 되겠나? 그리스도의 향기도 마찬가지다.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좋은 향기가 나야 하는데 각종 인간의 더러운 냄새, 세상의 냄새만 난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릇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담긴 물을 마시면 그리스도의 맛이 나야 하는데, 사람의 맛만 난다면 어떻게 되겠나? 귀하게 쓸 수 없다.
질문)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금이나 은의 재질보다 그릇의 깨끗함을 더 중요하게 보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는 그릇으로 준비되기 위해서, 내 삶에서 깨끗하게 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나는 내 내면과 행실이 주님이 사용하시기에 충분히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부분에서 회개와 변화가 필요한가?
4.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깨끗해질 수 있나?
딤후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이 모든 것에서 깨끗해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피할 것을 피하고 추구할 것은 추구하는 것이다. 거룩한 삶은 항상 이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성경이 요구하는 거룩함은 결코 더러운 것을 멀리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추구해야 할 것을 열심히 추구함으로써 완성된다.
교회도 그렇다. 거룩한 교회, 온전한 교회는 안할 것을 안 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해야 할 것을 적극적으로 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당신은 어떤가? 교회를 향한 당신의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으로만 가득하지 않은가? 당신은 참된 교회를 진정으로 추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본질과 관련하여 당신이 적극적으로 헌신하고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술 취하지 않과 담배를 피지 않는 것으로 교회가 될 수 있는가?
(질문1-2中 택1)
질문1) 나는 내 삶에서 분명히 피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분별하고 있는가? 이러한 유혹이나 죄를 피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결단과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가?
질문2)단순히 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추구해야 할 의와 믿음, 사랑과 화평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들을 더 깊이 실천하기 위해 지금 당장 변화시켜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5. 그렇게 선을 추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좇으라고 한다. 이런 노력은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믿음 생활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혼자 믿음 생활하면 자랄 수도 없다. 10년이 되어도 제자리 걸음하는 사람들 있다. 왜 그런지 아나? “서로”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위험하다. 신앙에서 떠내려가더라도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 당신은 고독한 그리스도인인가?.
질문)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라는 말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서로를 도우며 신앙의 목표들을 추구하고 있는가? 공동체 내에서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은 무엇인가?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84 | 2024년 12월 1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12-04 | 26 | |
83 | 2024년 11월 24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11-27 | 24 | |
82 | 2024년 11월 17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11-20 | 28 | |
81 | 2024년 11월 10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11-13 | 27 | |
80 | 2024년 11월 3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11-06 | 49 | |
79 | 2024년 10월 27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10-30 | 26 | |
78 | 2024년 10월 6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10-08 | 53 | |
77 | 2024년 9월 22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09-25 | 44 | |
76 | 2024년 9월 15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09-18 | 36 | |
75 | 2024년 9월 8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09-11 | 32 | |
74 | 2024년 9월 1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09-04 | 42 | |
73 | 2024년 7월 7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07-16 | 38 | |
72 | 2024년 6월 30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07-16 | 26 | |
71 | 2024년 6월 23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06-26 | 522 | |
70 | 2024년 6월 16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4-06-19 | 516 |
댓글